리틀 썸머

내려갑시다.

FADE IN:

S#1 - EXT. 학교 공터 - 낮

scene-1

학교 건물 너머로 교복을 입은 두 남녀가 보인다. 서로를 향해 서있지만 은우는 태경과 눈을 맞추는 대신, 고개를 바닥으로 푹 떨구고 있다.

태경 (고민하는듯 한참을 말없이 다른 곳을 바라보며 긁적이다가, 시선을 은우 쪽으로 옮기며)
은우야. 내가 많이 생각해봤는데,
우리 사귀는 것 보단... 그냥 친구로 지내는게 좋을 것 같아.

은우 (천천히 고개를 들어 멍하니 태경을 바라보고)
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태경 너가 싫은건 아니고.. 우리 내년에 고삼이잖아...
여름방학 얼마나 중요한지 너도 알지?
나 이해 좀 해주라. (태경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지고 동그랗게 눈이 커진 은우 클로즈업 줌인)

동그랗게 눈이 커지는 은우.

태경(V.O)
그래도 그동안 재밌었잖아. 응?

S#2 - EXT. 학교 정문 - 낮

여름방학 시작이라 신난 학생들이 대부분 빠져나가 고요한 정문 앞. 아주 멀리서부터 “으아아!!” 하는 외침이 들려온다. 멀리서 부터 달려와 전속력으로 질주하며 교문을 빠져나가는 은우. 교문을 먼저 통과했던 여고생 두 명이 은우가 달려간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다. (계속해서 달려나가며 은우 프레임 아웃) [ 화면 중앙, 타이틀 ‘리틀썸머’ ]

리틀 썸머

S#3 - EXT. 시골집 - 낮

scene-3

(꼬끼오- 하는 닭소리 사운드 연결) 은우가 시골집 평상에 누워 천장을 보고있다. 멍한 표정. 의욕이 없어 보인다. (정면, 카메라는 천장위치. B.S. 직부감) (롱샷으로 연결) 시골집 풍경이 보인다. 평상에 누워있는 은우. 화면에 살짝 걸려있는 농기구. 할머니(나옥정, 68세)가 걸어나와 농기구를 집어든다. 굉장히 쿨하고 터프해보이는 모습. 어깨에 농기구를 걸고 은우쪽을 쳐다본다. 농기구를 들고 은우가 있는 평상을 향해 걸어가는 옥정. 마루에 걸터앉는다. 다리 한쪽은 세워, 그 위에 팔을 올려두었다. 은우의 할머니 답게 털털함이 느껴지는 행동.

옥정 (멍 때리는 손녀를 바라보다 은우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겨~ 느이 엄마한텐 말 하고 왔어~?

은우 (여전히 천장만 바라보며 묵묵부답. 일부러 무시한다기 보단 멍한 상태로 보인다.)

옥정 (한숨을 쉬며 안타깝다는 듯 쳐다보고)
으이그..

자리에서 일어난 옥정. 방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찾는지 뒤적이는 소리가 들린다. 누워있는 은우의 몸에 화투치듯 명함을 탁 던지는 옥정.

옥정 이 동네에 말여, 유명한 해결사가 있댜.
누워서 이르케 썩힐 시간있으믄 차라리 연락이나 함 혀봐!

해결사에 대한 정보를 주고 쿨하게 걸어간다. 들고 있던 겉옷을 입으며 대문을 향해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안주머니에 있던 선글라스를 꺼내는 옥정.

옥정 (선글라스를 들고)
난 쬐까 놀다와야쓰것다.
집 잘 보고있어라잉?
(말을 마침과 동시에 선글라스를 쓰고 쿨하게 떠난다)

옥정이 떠나도 여전히 멍한 은우. 천천히 배 위에 던져진 명함 쪽으로 턱을 당겨 쳐다본다. 올려진 명함을 잠시 보다가 집어들어 자세히 살펴보지만 이내 한숨쉬며 관심 없다는 듯이 머리 위로 휙 던져버린다.

S#4 - I/E. 구멍가게 - 늦은 오후 - 해질녘

덜그럭 하는 소리와 냉장고 문이 열린다. 은우의 얼굴은 여전히 별 의욕이 없다. 뭘 마실지 고민하는 은우의 뒷쪽에서 계속 전화 통화하는 소리가 들린다.

슈퍼 아주머니 (V.O)
아니 왜~ 그 해결사 있잖아!
잃어버린 땅문서를 찾아다줬다네 글쎄~

해결사라는 단어에 멈칫한 은우. 콜라 한캔을 집어들고 몸을 돌린다. 계산을 위해 계산대쪽으로 다가가지만 등을 돌린 채 통화에 집중하는 슈퍼 주인아주머니.

슈퍼 아주머니 (다가오는 은우를 보지 못한듯)
그래애~
(큰 소리로 맞장구치며) 대단해 아주~

돈을 느릿하게 꺼내며 은근슬쩍 귀를 기울이는 은우.

슈퍼 아주머니 뭐어? 박영감네 며느리도 돌아왔다고?!
(놀랍다는 듯) 그 양반을 어떻게 설득했대?

아무래도 이쪽을 볼 것 같지 않은 아주머니에게 시선을 둔 채로 계산대에 돈을 올려둔다.

슈퍼 아주머니 (V.O)
어머어머... 괜히 해결사가 아니네~ 지선엄마, 혹시 아직 명함 가지고 있어?

옆을 지나치며 눈을 굴리는 은우. 뒷쪽을 한번 흘끔거리곤 재빠르게 걸어 집으로 향한다.

S#5 - INT. 시골집 - 밤

무언가를 찾는 듯 주변을 마구 뒤지는 손. 방에서 아까 전 던져버렸던 명함을 다시 찾아낸다. 주워든 명함을 보는 은우.(명함 뒷면이 보이게 로우앵글)

S#6 - EXT. 파란 대문집 앞 - 낮

scene-6

한가로운 한 낮의 동네 풍경. 새소리가 들린다. 누군가를 찾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핸드폰을 하며 서있는 은우. 어디선가 발소리가 들린다.

은하 (V.O)
(명랑하고 당찬 목소리로)
연락주신 분이죠?

등 뒤로 들려온 목소리에 은우가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뒤를 돌아본다. 하지만 정면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다. 천천히 아래로 떨어지는 시선. 그 끝엔 해맑은 아이 두명이 보인다. (하이앵글) 아이들을 내려다보는 은우의 표정은 무표정하지만 상황파악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로우앵글)

은하 (은우를 향해 손을 내밀며)
우주 해결사무소의 대표 정은하입니다. 반가워요!

혜성 (옆쪽에는 네발 자전거를 세워둔 채로)
(여전히 멈춰있는 은우의 손을 잡아 은하의 손에 가져다대주며)
전 강혜성이에요. 팀장이죠!

천천히 상황파악이 되는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위아래로 마구 흔들리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다가 입을 연다.

은우 (무언가 말을 하려는듯 입을 뻐끔)

은하 잠깐.
(손을 들어 은우를 저지하고 새침한 목소리로)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착수금을 먼저 받아야겠어요.

눈썹을 씰룩거리는 혜성과 씩 미소짓는 은하. 은우는 이 상황이 어이가 없다.

S#7 - EXT. 구멍 가게 앞 - 평상 - 낮

scene-7

아이스크림을 물고있는 은하와 혜성. 열심히 쪽쪽거리며 즐거워보인다. 그 옆에 나란히 앉아있는 은우는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는 것도 그대로 두고 얼빠진 사람처럼 앉아있다. 옆 쪽에 앉은 아이들을 한번 힐끗 보며 한숨을 내쉬는데 어쩐지 벌써부터 지친 얼굴이다.

은하 (다 먹은 아이스크림 막대를 쪽, 하고 빨고는)
착수금도 받았겠다.. 이제 슬슬 시작해볼까요?
강팀장!
(옆에 앉은 혜성을 툭 친다)

혜성 네, 대표님!

혜성이 매고있던 가방에서 메모장을 꺼내고, 두어장 넘겨 백지가 나오자 펜을 들고 은하 옆에 자리를 잡는다.

은하 이름이 뭐에요?

은우 ..차은우.

은하 (잠시 은우를 뚫어져라보다가)
얼굴이 이름을 못따라가네요.

은우 지금 뭐라했ㄴ

은하 (빠르게 말을 중간에 끊고)
나이는여?

은우 열여덟.
(떨떠름하게 대답하다가 정신차리고는)
아니, 근데 진짜로 너희가 해결사야?

은하 그럼 가짜겠어요?

여전히 새침한 은하가 톡 쏘아붙인 뒤 잠시 고민하는 듯 눈을 굴린다.

은하 보니까 각이 딱 나오네.
(똑바로 쳐다보며)
연애고민이죠?

찔린듯 움찔하며 시선을 피하는 은우. 일단은 믿어볼까 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은우 뭐....

혜성 (두 눈을 빛내며) 연애 고민이라면 또 저희 전문이죠!! 헤어지신건가요?

은우 어...
(이 관계를 어떻게 설명할지 모르겠는지 머뭇대다가)
헤어졌다고 말하기도 애매한게 사귀는 사이는 아니었거든.
근데... 또 그냥 친구라고 하기엔.....
아 뭐라해야돼..
아무튼, 완전 기분 별로야.

은하 (눈을 가늘게 뜨며 알만 하다는듯)
아아~

옆에 앉아 열심히 무언가를 적던 혜성의 메모장에 ‘어장관리’ 라고 적혀있다. 나란히 메모장을 내려다보던 은하와 혜성이 눈빛을 교환한 뒤 은우를 동시에 쳐다본다.

은하 걱정마세요!
(짧게 숨을 뱉고 자신만만하게)
저희가 고객님의 이별 극복을 도와드릴게요!

S#8 - EXT. 뒷산 - 오후

scene-8

봄과 달리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로 우거진 여름의 숲길이 새파랗다. 사방에서 들리는 매미 울음소리.

은우 (힘든지 잠시 멈춰서서)
아~~~~! 어디까지 가는데!!

저희끼리 열심히 오르던 은하와 혜성도 멈춰서서 동시에 뒤를 돌아본다.

혜성 (큰 가방의 가방끈을 양 손으로 움켜쥔 채로)
거의 다왔어요! 좀만 힘내요 고객님!!

두 아이들은 응원의 한마디를 남긴 채, 다시 은우보다 앞서 걸어올라간다. 잔뜩 지쳐서는 몸을 숙이고 양 무릎에 손을 올려 기울어진 자세로 얼굴로 아이들을 쳐다보다가 짧게 탄식을 뱉으며 따라가는 은우.

은우 같이 가~!

CUT TO: 아이들이 멈춰선 곳까지 올라가니 언덕 너머로 탁 트인 저수지가 보인다. 저수지를 바라보며 팔짱끼고 서있는 은하.

은하 이별극복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어요.

헥헥거리며 겨우 따라와 숨을 고르며 땀을 닦는 은우쪽으로 은하가 고개를 돌려 마주본다.

은하 그 중 첫째로 가장 중요한 건, 자존감 회복하기예요.

혜성 그것 때문에 여기 온거구요!
(저수지를 가리키며)
여기서 외쳐보세요! 나는 충분히 멋지다!

은우 (대놓고 기겁하며)
뭐? 싫어!

혜성 (두 손을 입 앞에 모으고 헉 하고 놀라는 표정)
고객님! 저희를 믿고 따라주셔야죠!!

은우 믿고말고 이게 무슨 자존감 회복이야!
야, 쪽팔려서 더 쪼그라들겠다!

은하, 혜성 (동시에)
고객니임!!!

은우 아 진짜...

아이들 눈치를 보며 저수지가 잘 보이는 언덕 위로 올라간다. 버벅거리며 도통 입 밖으로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은우.

은우 (한숨 한번 쉬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나, 나는 충분히 ..... 멋지다..
(됐냐는 얼굴로 뒷쪽을 힐끔거린다)

은하, 혜성 (V.O)
(어림없는 소리. 다시 한 번 동시에)
더 크게!

아 제발, 하는 표정을 짓지만 은우의 등 뒤에서 응원하는 아이들은 물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씨..하고 중얼거리다가, 어쩔 수 없이 다시 정면을 보고 선 은우. 크게 숨을 들이쉰다.

은우 나는!! 최고다!!!

은하, 혜성 최고다!!!
(따라하며)

아주 멀리서 쩌렁쩌렁하게 소리치는 은우. 익스트림 롱샷

은우 나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다아아!

(BGM삽입, 몽타주 연결)

S#9 - I / E. 시간 흐름을 보여주는 몽타주

(카메라 무빙多)

  1. 할머니와 마루에 앉아 수박을 먹던 은우에게 놀러온 아이들.
    또왔냐는 표정의 은우.
    (낮) 빨리나가자며 독촉하는 아이들에게 향하는 은우.
    손을 흔들어주는 할머니. (원테이크)(의상 바뀜)
  2. 풀밭에 누워 뒹굴거리는 세 명. 바람이 분다. 강아지풀을 쥔 손을 하늘로 뻗어 흔든다. (오후)
  3. 다리 앞에서 불꽃놀이 하는 셋. 불꽃 클로즈업. 다리가 나오는 풀샷. 웃는 세 명. - 화면가리는 트렌지션. (밤)
  4. (트렌지션 연결) 자전거를 타는 은우와 그 뒤에 앉은 은하. 그리고 뒤따라 네발 자전거를 타는 혜성 (의상바뀜) 자전거를 타며 하늘을 보는 은우 클로즈업. 기분 좋아보인다. 웃다 뒤돌아보기. 롱샷과 연결. (오후)
  5. 마을 입구에 있는 정자에 앉아서 과자를 먹는 세 사람. (오후-해질녘)
  6. 일몰 때 집으로 돌아가는 세 사람의 뒷모습. 은우와 혜성 둘다 자전거를 타지않고 끌고가고 있다. (풀샷)

은우 근데 넌 왜 아직도 네발자전거 타?

혜성 어....그니까! 왜냐면!

은하 강혜성 겁쟁이래-요-

혜성 아..!
(부끄럽다는 듯이 발발거리며)
사나이의 콤플렉스는 건드리는거 아니에요오~!

은우 (건성으로)
어 그래 알았다~

혜성 (멈춰서고)
누나아~!!

투정부리지만 기다려주지 않고 앞서 걸어가버리는 둘을 따라 달리는 혜성. 놀리며 웃는 은우와 은하의 웃음소리가 밝다.

S#10 - I / E. 시골집 - 저녁

scene-10

개짖는 소리와 함께 시골집 인서트. 가방에서 과자를 꺼내는 혜성의 손과 과자봉지 C.U 옥정이 과일을 깎아 문 앞에서 내민다.

은하 (일어나서 받아들고, 밝지만 예의바른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은하가 과일이 담긴 접시를 받아와 은우의 옆자리에 앉는다. 여전히 과자를 꺼내고 있는 혜성. TV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셋.

혜성 (품 안에 과자를 쌓아놓고는)
누나는 뭐가 제일 좋아?!

은우 난 이거.
(과자 하나를 골라 들고 뜯으려다가 멈칫하며)
그래서, 오늘은 또 뭔데?
(혜성쪽으로 시선을 둔다)

혜성 (가방에서 DVD를 꺼내 보여주며 새초롬하게 은우를 쳐다본다)
이별극복 대작전 마지막 챕터! 마음껏 울어보기!

은우 (아무말 없이 쳐다보다가 티비로 고개를 돌리며)
그래, 맘대로 해라~

은하 난 이거 먹을래!
(은우 너머로 팔을 뻗어 과자를 하나 가져오며)

봉지를 뜯던 은하의 얼굴에 TV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비친다. 영화가 시작하는 걸 느꼈는지, 시선을 TV 방향으로 옮기는 은하.

혜성 어, 시작한다!
누나 지금부턴 맘껏 울어도 돼!
막 시원하게! 알았지?!

은우 (혜성을 보며 피식)
어-.

과자를 까먹으며 부산스러운 아이들. 영화에 집중하는 셋. 포크로 과일을 찍어먹는 혜성.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울먹거리기 시작하는 아이들. 정작 울어야하는 은우는 무표정인데, 양 옆에서 울음이 터진 혜성과 은하. 아이들은 울다 지쳐 잠들고 은우의 손엔 리모콘이 들려있다. TV를 끄는 은우. (계속해서 점프컷 연결)(정면샷) CUT TO: 조용해진 방 안. 혼자만 앉아있는 은우. 양 쪽에 널부러진 아이들. 잠이 든 은하와 혜성이 깨지 않게 조심히 몸을 일으킨 은우가 방 밖으로 나가 마루에 자리잡고 앉는다. 여름이지만 밤공기가 살짝 차다. 팔을 쓸어대는 은우. 잔잔하게 울리는 풀벌레소리. 마루에 앉아 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핸드폰 앨범에 들어가 이전에 태경과 찍었던 사진을 한장 한장 넘겨본다. CUT TO: 곤히 자고있던 은하가 꿈뻑거리다 눈을 뜬다. 비어있는 옆자리를 보고 살짝 상체를 일으켜 바깥쪽을 쳐다보다 은우를 발견하고 잠시 바라본다. 곧 옆에서 자고있던 혜성을 흔들어깨우고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코와 입 가까이 대고 ‘쉬..’ 소리를 낸다. 잠에서 덜 깬 혜성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방문 바깥으로 보이는 은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함께 뒷모습을 바라보는 아이들.

S#11 - EXT. 시골집 - 마당 구석 - 낮

scene-10

구석 틈에 아이들의 등이 멀리서 보인다. (F.S) 마당 구석자리에 착 붙어서서 무언가 꽁얼꽁얼거리는 둘.

혜성 (속삭이는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가지고 왔어?

은하 (품 안에서 은우의 핸드폰을 꺼낸다)
응, 여기.

혜성 근데.. 정말 괜찮을까? (주변을 힐끔)
누나가 화내면 어떡해..!

은하 너도 어제 봤잖아. 언니한텐 새로운 방법이 필요해.
그리고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잖아.
(핸드폰을 켜 번호를 찾으며)
의뢰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직접 부딪치는 방법밖에 없어!
잘하면.. 그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혜성 (입술을 삐죽내밀다가 곧 끄덕이며)
그렇게 되면 누나가 좋아하겠다!

혜성에 말에 씨익 웃는 은하. 심호흡하고 그 이름을 꾹 누르는 작은 손.

은하 혜성아 대본!

혜성이 펼쳐진 메모장을 은하의 앞에 들어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다가 뚝 끊기고, 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태경의 목소리. 비장한 표정의 아이들.

태경(V.O)
여보세요?

눈을 맞추는 은하와 혜성. 서로를 바라보며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태경(V.O)
(잠시 정적)
.. 은우야?

은하가 숨을 크게 들이쉬고 무언가를 말하려던 그 순간, 태경의 목소리 너머로 누구냐 묻는 여자의 음성이 들려온다.

태경(V.O)
(핸드폰을 손으로 막았는지 전보다 작아진 음성으로)
아, 그냥 아는 사람이야. 신경쓰지마. (다시 크게) 여보세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생각해두었던 질문거리를 모두 잊어버린 은하와 혜성이 돌처럼 굳어버린다. 입모양으로 어떡해..하고 중얼거리는 혜성. CUT TO: 아이들이 당황한 사이, 잠에서 깬 은우가 한 손으론 등을 긁적이고 늘어지게 하품을 하며 방 밖으로 나왔다가 구석이 살짝 소란스러운 것을 느끼고 그 쪽으로 걸어간다. (F.S)

은우 얘들아 뭐해~?

자고 일어난지 얼마되지 않아 나른한 얼굴의 은우. 아이들은 갑작스러운 은우의 등장에 깜짝 놀라 뒤돌아본다.

은우 (피식 웃으며)
뭘 그렇게 놀라?
(손에 들린 핸드폰을 보고 태평하던 얼굴이 굳는다.)

어쩔 줄 몰라하는 은하와 혜성.

혜성 (은우와 은하를 번갈아 본 다음에)
누나 그게...

은우 (눈치보는 아이들을 확인하고)
그거 내 폰 아냐?
(대답이 없자)
... 지금 뭐하는건데.
(올라오는 화를 누르며 핸드폰 액정을 쳐다본다.)

핸드폰에 떠있는 태경의 이름 인서트. 기함하며 은하 손에 들린 핸드폰을 빼앗아 바로 통화 종료버튼을 누른다.

은우 (눈을 뾰족하게 뜨고) 야! 너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해? 왜 일을 더 벌려놓냐고!!

은하 (버벅거리며)
언니, 그냥... 우리는, 언니를 위해서,

은우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헛웃음)
위해서?

두 아이들을 쳐다보는 눈이 차갑다.

은우 대체 뭐가 날 위해서인데.
(숨을 들이쉬고는)
너희는 처음부터 나한테 별 도움도 안됐어.
일만 잔뜩 벌리면서 너네가 무슨 해결사라고 나대!!

있는 힘껏 소리치는 은우. 잔뜩 얼어붙어서 울먹이는 아이들. 버럭 화를 냈지만, 질러놓고 아차 싶었는지 순간 멈칫한다. 하지만 이내 머리를 쓸어넘기며 시선을 돌린다.

은우 ... 그냥 가. 꼴도보기 싫어.

머뭇대던 아이들이 아이들이 울며 떠나고 혼자 남겨진 은우는 한참을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있다가 크게 한숨을 쉬다 주저앉는다.

S#12 - EXT. 시골집 - 마루 - 밤

scene-12

처음 시골집에 왔을 때와 같은 자세로 평상 위에 누워있는 은우. 오히려 표정은 그때보다 훨씬 더 어두워보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옥정은 열심히 평상 위를 걸레질하고 있다.(정면 하이앵글)

옥정 (V.O)
또 그러고 있는겨?!

힘 없이 밀리는 은우. 하지만 일어나지도, 대답하지도 않는다. 은우의 몸에 자꾸만 걸레질 하는 손이 막히자, 옥정은 걸레를 든 손을 평상 위에 탁 놓는다.

옥정 아이고오, 좀 비켜봐! 바닥 좀 닦게!

은우의 반응을 살피는 옥정.

에잉...
(혀를 츳츳 하고 차다가 은우를 힐끔보고)
요 며칠 괜찮더니. 그 머스마 할미가 가서 콱, 때려주까? (장난스럽게)

별로 대답하고싶지 않은지 등돌려 눕는 은우를 쳐다보며 눈치를 보던 옥정이 바깥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한참을 아무말이 없다가.

옥정 은우야,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또 사람 덕분에 나을 수 있디야.
그러니 하나에 너무 매여있지 마러. 잉?

은우의 작은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옥정. 가만히 듣고있던 은우가 드디어 입을 연다.

은우 할머니.

옥정 으잉.

은우 그럼 내가 상처줬을 땐 어떻게 해야 돼?

옥정 고거야 쉽제! 뭐든 솔직해지면 되는겨.
아프면 아프다하고, 미안하면 미안하다 하고.
그게 안되면 너도 남도 곪는겨.

말을 마친 옥정은 더이상은 볼일 없다는 듯 쿨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으로 들어간다. 홀로 남은 은우. 팔을 베고 옆으로 누운 자세 그대로 있다가 하늘쪽으로 몸을 돌린다. 그러다 얼마 뒤 고개만 돌려 옆에 놓인 핸드폰과 눈싸움. 그러다 무언가 결심한듯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를 고쳐 앉고, 잠시 고민하다 태경에게 전화를 건다.

은우 (통화음이 끊기자 잠시 멈칫하지만 이내 입을 연다)
... 여보세요. 응, 나야.
어, 뭐 잘.. 지내지. (머리를 긁적)
아까 일 때문에. .. 응. 그니까. 응...

핸드폰을 귀에 대고 있는 은우의 뒷모습. 은우가 말을 고르며 버벅이자 수화기 너머에서 태경이 먼저 이야기를 꺼낸다.

태경 은우야,
(불러놓고 잠시 기다리지만 대답이 없자)
혹시나해서 물어보는건데.. 너 아직까지 마음쓰고 있는건 아니지?

은우
(살짝 당겨져있던 입꼬리가 내려가고 옅게 숨을 들이쉬며 입을 다문다)

태경 (이어지는 정적에 곤란한 투로)
에이.. 설마.
왜 그래, 솔직히 우리... 사귀는 것도 아니었잖아. (웃음기 섞인 목소리)

은우

태경 (계속해서 이어지는 정적이 불편한듯)
여보세요?

가만히 듣고 있던 은우. 한참만에 입을 연다.

은우 몰랐네. 너한테는 그냥 그렇게 가벼운 거였는데.
(고개를 살짝 떨구고)
나는 너 많이 좋아했어.

태경 아... 은우야 그게 아니라- (좋게 넘어가려는 말투)

은우 응. (태경의 말을 끊으며) 그건 후회안해.
근데 내가 좋아했던게, 진짜 너였던건지는 잘 모르겠다.

태경 은우야

은우 그래도 이거 하난 고마워.
덕분에 어떤 사람을 좋아해야할지 이제는 알 것 같아.
(눈을 가늘게 뜨고 입꼬리만 살짝 올리며)
일단 넌 아니고.

태경 그게 무슨소리야.. 말이 좀 그렇다.

은우 뭐긴, 잘가라는 소리지 (시무룩하던건 어디로갔는지 원래의 털털한 말투)
다시 연락하는 일 없을거야. 고마웠다. 잘지내.

태경 은ㅇ,

말을 마치고 통화종료 버튼을 누른다. 정적을 대신 채우는 풀벌레소리. 핸드폰을 든 손을 쭉 뻗어 통화종료 화면을 쳐다본다. 시원섭섭한 표정. 곧 손을 툭 내려놓고 윗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후우우..하고 잠시 숨을 뱉는다. 오래 묵혀있던 마음 속 응어리를 정리한 것 처럼 앉았던 자리를 훌훌 털고 일어나 방안으로 들어간다. (마루와 방문 정면샷. 고요한 밤에 풀 벌레 소리만 들린다.)

S#13 - EXT. 시골집 - 아침

scene-13

벌컥 열리는 방문. 개운한 얼굴로 기지개를 피며 마당으로 걸어나와 신발을 신기 위해 몸을 기울인 은우의 눈에 마루 틈에 껴있는 네모난 무언가가 들어온다. 들어올려 살펴보니 해결사의 명함이다.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려다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곤 다시 새로 주운 명함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주머니를 뒤적거린다. 주머니에서는 또 다른 명함 하나가 나온다.

은우 뭐야...

번듯한 명함 하나와, 그를 따라한듯하지만 어딘가 엉성해보이는 또 다른 명함. 양 손에 하나씩 쥐고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천천히 입을 벌리고 헛웃음. 곧 피식하고 바람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는다. 한참 웃고 난 뒤, 은우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집을 나선다.

S#14 - EXT. 마을 - 공터 - 아침

scene-14

아이들을 찾아 마을을 어슬렁거리던 은우의 귀에 우당탕 하는 소리가 들린다. 자전거 연습을 하는 듯 보이는 혜성과 은하.

은하 (혜성이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며)
괜찮아? 어, 너 피난다 피!!!

혜성 (순간 울먹거리지만 씩씩하게)
괜차나...
(한숨쉬고 앉아있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침울해보이는 아이들. 그런 둘 쪽으로 은우가 터벅터벅 걸어간다.

은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같은 말투로)
뭐해?

쓰러져있는 자전거를 세우는 은우.

혜성 누나..!

쭈뼛거리며 은우를 보는 은하. 은우는 그런 은하를 보며 어색하게 웃는다. 늘 붙어있던 혜성의 자전거의 보조바퀴를 떼어낸 것을 보고, 잔뜩 까진 무릎팍까지 시선이 천천히 이동한다. 은우 POV. 혜성의 무릎을 보고 있는 은우. 곧 둘을 쳐다보며.

은우 자전거, 내가 도와줄게.

CUT TO: 제법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바퀴 C.U. 은우가 자전거의 뒷쪽을 잡고 넘어지지 않게 도와주고 있다.

혜성 (비틀거리는 자전거를 겨우겨우 타며)
누나!! 놓으면 안돼! 알겠지?! (크게 소리친다)

은우 알았어, 알았어. 걱정하지마

혜성 약속했어~~! 절대 놓지 않기야!!

몇 미터 정도를 그 자세로 함께 가다가 조심스레 잡고있던 손을 놓는 은우. 여전히 놓지 말라고 소리치고 있는 혜성은 스스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보며 눈은 동그래지고 입은 크게 벌어진 은우와 은하가 서로를 쳐다보며 함께 기뻐한다. 마주보고 웃는 둘. (“잘 잡고있지?!!” 혜성 목소리 V.O)

S#15 - EXT. 구멍가게 - 평상 - 낮

scene-15

구멍가게 인서트. 혜성의 자전거를 옆에 세워놓고 처음 만났던 그 모습 그대로 구멍가게 앞에 나란히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세 사람. 그러나 이전보다 가까워진게 보인다. 양 팔을 뒤로 뻗어 지지한 채 하늘을 보던 은우가 무심한 말투로 사과를 툭 던진다.

은우 미안해, 화내서.

혜성 (동그래진 눈으로 은우를 보다가 배시시 웃으며)
괜찮아 누나. 우린 친구자나!
우리 엄마가 그랬는데, 원래 애들은 싸우면서 크는거래!

혜성이 어른스럽게 말하는 것을 들은 은우. 솔직한 웃음이 터진다. 별 말 없이 옆에 있던 은하 또한 은우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은하 언니, 나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웃는다)

은우 (가만히 둘을 쳐다보다가 모처럼 솔직하게 웃는 얼굴로)

은우가 미소지으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보자 두 사람도 다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따라서 하늘을 쳐다본다. 평화로운 시간이 흐르던 중 다시 은우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개구쟁이처럼 웃는 혜성. 매미소리가 시원하게 울린다.

혜성 누나, 우리가 말을 안한게 있는데, 이별 극복작전의 진짜! 마지막 챕터가 있어.

그게 뭐냐는 얼굴로 바라보는 은우를 향해 아이들이 또다시 예의 그 개구쟁이같은 미소를 띄며 말한다.

혜성, 은하 (동시에)
소.개.팅.

S#16 - INT. 카페 - 한낮

scene-16

큰 창으로 햇빛이 들어온 모양새가 제법 따스하다. 창을 바라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은우. 얼마안가 비어있던 은우의 앞자리에 누군가 들어와 앉는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안녕하세요. 하는 목소리를 듣고 창 밖을 보던 눈을 느릿하게 돌려 소개팅 상대를 확인한 은우. 허탈한듯 작게 웃는다.

민재 (활짝 웃는 얼굴이 앳되다.)

은하와 혜성이의 비슷한 나이 또래로 보이는 남자아이가 두 눈을 반짝이며 은우를 바라보고 있다.

은우 아... (눈을 돌리고 피식웃으며)
안녕.

아이를 향해 고개를 설렁설렁 끄덕이며 어색하게 웃어준다. 이제 애 놀아주는 건 선수가 된 은우는 여유롭다. 시간이 어느정도 흐른 뒤. 빨대로 커피를 휘휘 젓는 은우의 손. (C.U)

민재 (V.O)
누나는 커피 좋아하는구나아

민재 저는 아이스초코가 제일 좋아요!
(활짝 웃으며)
저도 어른되면 커피도 마실 수 있겠죠?!

재잘재잘 밝게 떠드는 아이의 말을 대강 들어주던 그때, 등 뒤로 입구 문에 달려있던 딸랑-하는 종소리가 들린다. 그소리에 맞춰 아이의 시선도 뒤로 향한다.

민재 어!! 형!!!

몸을 들썩이며 손을 마구 흔드는 아이.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그 말에 은우 또한 별 생각없이 심드렁하게 뒤를 돌아보는데, 무심했던 두 눈을 반짝이게 가득 채우는 건, 이 쪽을 바라보며 화사하게 웃는 은우 또래의 남자아이다. 시선을 떼지 못한 은우의 두 눈이 점점 더 커지고, 새로운 인연의 시작을 알리며,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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